겨울보다 더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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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에서 . 우울이우울하고터지네

아무리 봐도  나에게는 없다. 
내 얘기를 하고 싶은데 진짜 내 편만 되어서 나를 공감해줄 그런 사람이 나에게 없다. 

나도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런 나를 이해해줄 사람은 없다. 


물론 내가 지금의 꼬인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봐서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너무 우울하고 우울하고, 또 우울해서 
그냥 꼬여있다. 
취직해서 연수가기 전에 바쁘다는 친구도 얄밉고,
최종 결과는 아직 안났지만 바쁘게 면접 다니는 친구도 부럽고, 
자신의 확고한 꿈이 있어서 1년을 더 공부하겠다는 친구의 의지도 부럽고,
안정적인 직장 안에서 일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는 친구도 부럽고,
뭐가 그리 바쁜지 내가 용기내서 보낸 카톡에 늦게 답장하는 친구는 짜증나고 
_ 나는 그렇게 민첩하게 그 아이의 고민 카톡에 칼답장을 해줬는데 잠도 자지 않으며 너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는 어떻게 다음날 아 발표 준비하느라 바빴다 가 끝이니?
나보다 공부 잘하는 것 같은 머리가 쌩쌩 돌아가는 똑똑이들도 짜증난다. 

아 근데 진짜 사람이 꼬이니 정말 천해도 이렇게 천해지는 구나. 
내가 쓴 글을 보면서 나의 천박함을 느끼며 더 비참해진다. 

친구.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의 불행에서 왜 나는 힘을 얻는 것인가. 
왜 그들이 나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까.
그리고 그들의 행복에서는 불안감을 느낄까


글을 쓰다보니 결론은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했을 때 나만큼 비루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쓰다 보니 나의 천박함만 아주 명확하게 느껴버렸다. 

내 첫사랑 하루가하루하고흐르네

첫 사랑이라고 해도 될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첫 짝사랑인 그.
내 기억 속의 소년. 그리고 지금은 남자가 되버린 청년.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고백을 못해서인지 그 후 친구도 아니게 관계가 흐지부지 되어서 인지
나는 그에 대한 미련을 정리하지 못하고 그냥 그 마음이 그대로 남아버렸다.
그 마음 때문에 여태까지 성장히자 못했다면 핑계일까?

어쨋든 나는 그 아이를 처음 봤떤 중3 이후로 거의 5년 간은 모두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 중 4년은 연락이 안되는 사이였지만.

그렇게 중 3이후로 거의 1년은 연락을 내가 일방적으로 하고 그 아이는 귀찮아 한 채로
2년은 연락이 안 된 채로 시간은 흘러갔고 내 마음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고 3이 되었는데 우연치 않게 학원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나는 너무 선명하게 그 아이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내게 처음 건낸 첫 마디가 "oo 학원 다녔지?"여서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은 그 아이의 모습에 나는 너무 상처받아 버려서
고백도 하지 못했지만 "넌 아니야"라는 거절을 돌직구로 받은 것만 같아서 나는 "어어......"라는 말로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렇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서도 싸이월드로 그 아이가 어디 학교에 갔는지, 여자친구는 생겼는지, 그 여자친구는 어떤 아이인지 까지 다 알아냈지만
끝내 그 아이에게 친구 신청도, 연라고 할 수 없었고 그냥 끝이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 신입생으로서 신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 때
학교 축제로 신촌에 가게됐다.
그리고 또 우연치 않게 만났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미소를 지어야 할 지, 내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인사를 해도 좋을지, 아니면 여기서 손이라도 흔들어도 좋을지
정말 판단이 서지 않았고.
그렇게 멍하니 그 아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도 나를 쳐다봤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지도 헷갈린다.
그렇게 나에게는 정말 긴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그 아이의 여자친구가 왔다. 그 아이의 여자친구가 신촌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내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어서
TV로만 보던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 여자친구는 정말 예쁘고, 단정한 느낌을 풍기는 미인이어서
'와 정말 잘 어울리는 구나. 저런 여자쯤 되어야지 쟤랑 사귈 수 있는 거구나'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신촌은 나의 자괴감 덩어리가 되버렸다.
그 후로 정말 피할 수만 있다면 신촌은 무조건 피했다.
신촌은 안돼. 이대, 홍대는 가능해. 하지만 신촌은 안돼.


그리고 몇 년 만에 오늘 처음 신촌에 갔다.
이제는 그 장소가 어디인지 내가 그 날 갔던 술집이 어디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나의 모습만이 기억난다.
축제라 꾸민다고 꾸몄지만 그 예쁜 여자친구 앞에서 초라해져버렸던 나의 모습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오늘 나에게
너에게 "그 날 너는 참 운이 없었던 거라고 생각한다고. 나는 그 말을 너에게 해주고 싶었는데, 나 역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서
너처럼 자괴감에 빠지는 사람이라서 너를 너무 이해해서 그 말을 못했어. 근데 꼭 그 말을 해주고 싶었어. 넌 정말 그냥 운이 없었던 한 사람 중에 하나야." 라는 말을 해주었다.
이전 같다면 다른 사람의 말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을 텐데.
운이 없었더라는 말이 귀에 박혀서
그냥 그 말이 머리속을 지배해버렸다.

신촌에서 집에 오는 동안 그 생각뿐이었다.
난 운이 없었어. 운이 없었어.

이상하게 그 말 하나로 나의 오랜 짝사랑을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말을 해온지 벌써 몇 년이 된지 모르겠다.
내 남자를 보는 이상형이 되버린 나의 첫 짝사랑아
이제는 안녕.
제발 안녕
부탁이야 안녕.
안녕.
안녕.

애매한 시점.

자존감은 바닥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바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아래로 내려갈까만 고민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다. 
내 자존감한테는 위라는 방향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꼭 나같아서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질 않는다. 

소속이 애매한 시점이다. 
대학교를 졸업이라는 형태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벗어났다. 
하지만 나의 다음 소속은 전혀 내 눈 앞에 보이질 않는다. 
참 한심한 것 같다. 
남들은 다들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있는데 나만 시간이 많다. 
사실 시간이 많다고 할 순 없다. 
내 눈 앞에는 할 일이 쌓여 있으니까. 

근데 도무지 의욕이 없다. 
의욕이 없어서 멍하니 앉아있고, 그런 나를 떠올리며 자존감은 더 떨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니 밖에는 나가기도 싫고 
그냥 악순환의 반복이다. 

누군가가 나의 두 손을 붙잡고 으쌰 하며 일어나 줬으면 좋겠다. 
물론 그럴 사람은 없다는 걸 내가 더 잘 알고 있지만 
손을 붙잡고 같이 뛸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도 힘들텐데 왜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나는 바보다. 

청소를 안한 내 방에서 돌아다니는 먼지 뭉치보다도 더 쓸모가 없다. 
언젠가는 연습장으로 쓰겠지라는 생각으로 모아둔 이면지보다도 훨씬 쓸모가 없다. 
옷을 걸지 못하고 가볍게 있는 옷걸이보다도 가치가 없다. 


참 말도 안되게 쓸모없는 생각인데 
누군가 나를 채찍질 해주면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는 그토록 원하던 자유인데 
막상 얻고 보니 나의 자유는 주인을 잘못 만나 방치되고 말았다. 
미안하다 나의 자유야. 
 

동방신기. 나의 아이돌 우울이우울하고터지네

아이돌 천국이다. 티비를 틀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아이돌이 나온다.
어렸을 때에는 아이돌이 영어 단어인지도 모르고 그냥 가수를 뜻하는 말인지 알았다.
내가 7살 때일까 명절 때 간 친척 집에서 친척 언니 둘이 강타인지 토니를 두고 자신 것이라고 주장하며 실랑이를 벌일 때 나는 너무 어렸기에 강타가 뭔지 토니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주변 어른들의 반응으로 언니들이 하는 저 행동이 굉장히 사소하고 무시받을 만한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3학년이 됐을 때 핑클 편지지를 사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 옥주현 편지지는 가지기 싫은데 왜 이렇게 많은지 불평하며 내가 좋아하던 성유리 언니의 편지지를 고이고이 모아두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까지는 가수에 관심이 없었다. 가요프로그램을 봐도 노래는 흥얼거렸지만 가수 자체에 대한 흥미는 생겨나지가 않아서 그들은 나의 세상과 접점이 없었다.

중1 때 세븐의 와줘를 듣고 뭔가 가슴이 두근두근 까지는 아니고 콩콩 띠는 경험을 하게 됐다.
가족끼리 장을 보러간 이마트에서 처음으로 음반을 파는 장소를 찾아가서 그 앨범을 찾았고 내가 스스로 산 첫 앨범이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노래들인 그 노래들은 그 당시에도 굉장히 좋아서 한 앨범에는 이렇게 많은 노래가 들어있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공기의 따뜻함으로 둘러쌓인 안방에서 티비를 보다가 정말 머리를 쾅 하고 맞은 것처럼 심장을 꽉 쥐는 것처럼 가슴이 떨리는 무대를 봤다. 그게 바로 동방신기의  hug였다.
앨범을 사달라고 조를 수 있는 이마트에 가는 기회는 언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난 그 떨림을 참을 수가 없었고 그 다음 날 학원 가는 길 내 돈으로 그 앨범을 사서 떨리는 마음으로 학원에 갔다.
정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그 학원에도 난 친구가 없었고 거기서도 조용히 있었지만 그 날 같은 반 아이들이 동방신기라는 그룹을 봤냐며, 앨범을 사야겠다며 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고 속으로 나는 이미 샀지롱 하며 우월감도 느꼈다.
앨범을 사서 hug, my little princess, whatever they say 세 곡 밖에 없는 노래를 정말 무한 반복으로 계속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컴퓨터를 키고 동방신기와 관련된 모든 카페에 가입하고 그들의 스케쥴을 확인하고 라디오를 챙겨듣고, 고정된 오디오로는 잡지 못하는 라디오를 잡기위해 mp3를 잡고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주파수를 잡고 불편한 자세를 그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위해 애를 쓰고 정말 열정이 넘쳤다.
내 생에 처음으로 그들을 보고 위해 가수 무대가 열린다는 중앙공원에서 오전 12시부터 밤까지 불편함을 참으며 기다렸고, 그렇게 그들과 함께 그 장소에 있다는 것 만으로 가슴이 뛰어서 그 사실 하나에 너무 떨려서 정작 무대 자체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밴을 타러 가는 유노윤호를 보면서도 이게 꿈인가 싶어서 그 다음 한 달간을 그 사실만 생각하면서 계속 설레여했다.

그렇게 그들은 내 세상이었다.
그 당시 내 삶은 왕따라고 해야할까 친구들 간의 갈등이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처음 겪는 사회적 갈등으로 너무 힘들어 하던 때여서 다른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내 슬픔을 받아줄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동방신기는 언제나 그들끼리 즐거웠고 밝았고 나에게 없는 정말 진정한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았고 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자기들 스스로 빛을 내며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없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그렇게 보냈다. 엄마 몰래 앨범을 3개씩 사고 참고서를 사야한다고 엄마 카드를 빌려서 잡지를 사서 한장이라도 그들이 나온 사진을 스크랩하며 광고 종이 한장이라도 오려서, 신문에 나온 그들의 기사를 오려가며 그렇게 내 삶을 채웠다.
내가 유일하게 정말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동방신기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어서 다른 친구와 펜팔도 했고 학교에서는 없는 나와 대화할 친구가 편지로는 있었다.
나에게 내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나에게 웃음과 친구를 주었었다.
아주 심각하게 그들을 나의 우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어두웠던 나에게 아주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나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hug 때의 시아준수 브로마이드와 동방신기 브로마이드는 떼지 못하고 있다. 그게 어느덧 2004년의 일이니까 이제 10년이 되었다. 사진 속 시아준수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내 옷장에 붙어있지만 그도 이제는 10살이나 나이를 먹고 저 때만큼 탱탱한 피부를 잃고 마른 몸매를 잃고 귀여운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다.


그리고 그의 외모가 바뀐 것 만큼 그들의 관계도 변하여서 3명과 2명으로 나뉘었다.
나는 이제 15살이 아니지만 겉으로는 아주 씩씩하고 단단하지만 그들의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있지가 않아서
나에게 친구들이 동방신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며 물을 때도 나는 모르겠다며 회피하였고,
그들이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줄 때에도 다른 이야기를 화제를 바꾸며 회피하였다.
나는 그들의 진실이 무엇이든 변명이 무엇이든 그들의 바뀐 관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있지가 않다.
나의 빛나고, 따듯한 그들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와서 그들이 갈라진 이후로는 그들의 무대를 찾아보지 않았다.
물론 어렸을 때의 사고가 남아있어서 앨범을 사며 그들이 1위를 하고 기뻐하겠지라는 생각에 앨범은 샀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은 멈춰버렸고 아예 그들을 좋아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내 삶에서 그들의 자리를 남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을 피해버렸다.


믹키유천을 좋아하지만 그가 나오는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보고싶다는 내용이 맘에 들었었는데도 아역 부분까지는 정말 열심히 보고 정작 성인연기자로 변해서는 윤은혜와 유승호를 본 기억밖에는 나지 않는다. 박유천을 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를 보면 모든 과거가 생각나면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어서 가끔 무대 영상이 올라오는 싸이트에서 5명의 동방신기가 불렀던 노래와 무대를 볼 때가 있다.
그 때마다 그 무대를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돌려버렸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인데. 예전에 계속 들었던 노래인데.
하는 생각과 옛날 생각이 나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심지어 무대를 보다가 울어버렸다.
그들을 보면 치유받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상처 받는다.
갈라져버린 그들을 보면 버려진 15살의 내가 생각난다. 친구라는 그 사회에서 버려져서 혼자 밥을 먹어야했던 그 때가 생각난다.
너무 아픈 상처라서 지우고 싶었는지 그 때 그 길고 긴 점심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때의 상처와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지금의 갈라져버린 그들은 그 때의 나를 생각나게 한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참 팬의 자격이 없다.
그들의 결과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 과거 상처 때문에 슬퍼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됐든 그들의 현재를 보는 건 너무 슬프다.

꼭, 제발 5명이 예전처럼 돌아갔으면 좋겠다.
이건 내 소원이다.

보고싶다. 우울이우울하고터지네

보고싶다. 
나 때문인지 꽁꽁 숨어버린 니가 보고싶다. 
내가 이렇게 몰래 널 보고 있는 걸 아는걸까
그래서 그렇게 내가 찾을 수 없게 꽁꽁 숨어버린걸까
니가 보고싶다. 
다른 사람도, 다른 무엇도 나에게는 중요하지가 않다. 

오로지 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니가 보고싶다. 
나의 시간을 멈추게 해주는 니가 보고싶다. 
내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니가 보고싶다. 
언제나 내가 변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니가 보고싶다. 
오로지 너만 보고싶다. 
세상을 다 돌아서라도 니가 보고싶다. 

하지만 넌 원하지 않겠지. 
넌 나를 기억도 하지 못할테지. 
그게 너무 슬프다. 

너도 나를 기억해줬으면 했는데
내 이름이라도 기억해주길 바랐는데

그래서 그 순간이 너무나도 밉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너와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데 
너는 나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미웠다. 
그 순간의 미움이 내가 기다려왔던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덮어버렸다. 
많이 좋아한 만큼 더 많이 슬펏다. 
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그것도 다 내 잘못이다. 
너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저 보고싶다. 니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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