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천국이다. 티비를 틀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아이돌이 나온다.
어렸을 때에는 아이돌이 영어 단어인지도 모르고 그냥 가수를 뜻하는 말인지 알았다.
내가 7살 때일까 명절 때 간 친척 집에서 친척 언니 둘이 강타인지 토니를 두고 자신 것이라고 주장하며 실랑이를 벌일 때 나는 너무 어렸기에 강타가 뭔지 토니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주변 어른들의 반응으로 언니들이 하는 저 행동이 굉장히 사소하고 무시받을 만한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3학년이 됐을 때 핑클 편지지를 사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 옥주현 편지지는 가지기 싫은데 왜 이렇게 많은지 불평하며 내가 좋아하던 성유리 언니의 편지지를 고이고이 모아두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까지는 가수에 관심이 없었다. 가요프로그램을 봐도 노래는 흥얼거렸지만 가수 자체에 대한 흥미는 생겨나지가 않아서 그들은 나의 세상과 접점이 없었다.
중1 때 세븐의 와줘를 듣고 뭔가 가슴이 두근두근 까지는 아니고 콩콩 띠는 경험을 하게 됐다.
가족끼리 장을 보러간 이마트에서 처음으로 음반을 파는 장소를 찾아가서 그 앨범을 찾았고 내가 스스로 산 첫 앨범이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노래들인 그 노래들은 그 당시에도 굉장히 좋아서 한 앨범에는 이렇게 많은 노래가 들어있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공기의 따뜻함으로 둘러쌓인 안방에서 티비를 보다가 정말 머리를 쾅 하고 맞은 것처럼 심장을 꽉 쥐는 것처럼 가슴이 떨리는 무대를 봤다. 그게 바로 동방신기의 hug였다.
앨범을 사달라고 조를 수 있는 이마트에 가는 기회는 언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난 그 떨림을 참을 수가 없었고 그 다음 날 학원 가는 길 내 돈으로 그 앨범을 사서 떨리는 마음으로 학원에 갔다.
정말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그 학원에도 난 친구가 없었고 거기서도 조용히 있었지만 그 날 같은 반 아이들이 동방신기라는 그룹을 봤냐며, 앨범을 사야겠다며 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고 속으로 나는 이미 샀지롱 하며 우월감도 느꼈다.
앨범을 사서 hug, my little princess, whatever they say 세 곡 밖에 없는 노래를 정말 무한 반복으로 계속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컴퓨터를 키고 동방신기와 관련된 모든 카페에 가입하고 그들의 스케쥴을 확인하고 라디오를 챙겨듣고, 고정된 오디오로는 잡지 못하는 라디오를 잡기위해 mp3를 잡고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주파수를 잡고 불편한 자세를 그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위해 애를 쓰고 정말 열정이 넘쳤다.
내 생에 처음으로 그들을 보고 위해 가수 무대가 열린다는 중앙공원에서 오전 12시부터 밤까지 불편함을 참으며 기다렸고, 그렇게 그들과 함께 그 장소에 있다는 것 만으로 가슴이 뛰어서 그 사실 하나에 너무 떨려서 정작 무대 자체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밴을 타러 가는 유노윤호를 보면서도 이게 꿈인가 싶어서 그 다음 한 달간을 그 사실만 생각하면서 계속 설레여했다.
그렇게 그들은 내 세상이었다.
그 당시 내 삶은 왕따라고 해야할까 친구들 간의 갈등이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처음 겪는 사회적 갈등으로 너무 힘들어 하던 때여서 다른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내 슬픔을 받아줄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동방신기는 언제나 그들끼리 즐거웠고 밝았고 나에게 없는 정말 진정한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았고 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자기들 스스로 빛을 내며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없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그렇게 보냈다. 엄마 몰래 앨범을 3개씩 사고 참고서를 사야한다고 엄마 카드를 빌려서 잡지를 사서 한장이라도 그들이 나온 사진을 스크랩하며 광고 종이 한장이라도 오려서, 신문에 나온 그들의 기사를 오려가며 그렇게 내 삶을 채웠다.
내가 유일하게 정말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동방신기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어서 다른 친구와 펜팔도 했고 학교에서는 없는 나와 대화할 친구가 편지로는 있었다.
나에게 내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나에게 웃음과 친구를 주었었다.
아주 심각하게 그들을 나의 우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어두웠던 나에게 아주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나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hug 때의 시아준수 브로마이드와 동방신기 브로마이드는 떼지 못하고 있다. 그게 어느덧 2004년의 일이니까 이제 10년이 되었다. 사진 속 시아준수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내 옷장에 붙어있지만 그도 이제는 10살이나 나이를 먹고 저 때만큼 탱탱한 피부를 잃고 마른 몸매를 잃고 귀여운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다.
그리고 그의 외모가 바뀐 것 만큼 그들의 관계도 변하여서 3명과 2명으로 나뉘었다.
나는 이제 15살이 아니지만 겉으로는 아주 씩씩하고 단단하지만 그들의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있지가 않아서
나에게 친구들이 동방신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며 물을 때도 나는 모르겠다며 회피하였고,
그들이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줄 때에도 다른 이야기를 화제를 바꾸며 회피하였다.
나는 그들의 진실이 무엇이든 변명이 무엇이든 그들의 바뀐 관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있지가 않다.
나의 빛나고, 따듯한 그들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와서 그들이 갈라진 이후로는 그들의 무대를 찾아보지 않았다.
물론 어렸을 때의 사고가 남아있어서 앨범을 사며 그들이 1위를 하고 기뻐하겠지라는 생각에 앨범은 샀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은 멈춰버렸고 아예 그들을 좋아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내 삶에서 그들의 자리를 남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을 피해버렸다.
믹키유천을 좋아하지만 그가 나오는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보고싶다는 내용이 맘에 들었었는데도 아역 부분까지는 정말 열심히 보고 정작 성인연기자로 변해서는 윤은혜와 유승호를 본 기억밖에는 나지 않는다. 박유천을 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를 보면 모든 과거가 생각나면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에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어서 가끔 무대 영상이 올라오는 싸이트에서 5명의 동방신기가 불렀던 노래와 무대를 볼 때가 있다.
그 때마다 그 무대를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돌려버렸다.
정말 좋아하는 노래인데. 예전에 계속 들었던 노래인데.
하는 생각과 옛날 생각이 나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심지어 무대를 보다가 울어버렸다.
그들을 보면 치유받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상처 받는다.
갈라져버린 그들을 보면 버려진 15살의 내가 생각난다. 친구라는 그 사회에서 버려져서 혼자 밥을 먹어야했던 그 때가 생각난다.
너무 아픈 상처라서 지우고 싶었는지 그 때 그 길고 긴 점심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때의 상처와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지금의 갈라져버린 그들은 그 때의 나를 생각나게 한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참 팬의 자격이 없다.
그들의 결과를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 과거 상처 때문에 슬퍼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됐든 그들의 현재를 보는 건 너무 슬프다.
꼭, 제발 5명이 예전처럼 돌아갔으면 좋겠다.
이건 내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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